자동로그인


     0 분
     1 분
2000/04/25 다음카페창설
2001/02/10 인터넷 이전
 Member :
 Total : 1,852,849 명
 Today : 10 명
 Yesterday : 27 명
홈피 리뉴얼에 대한 조사[test] [335]
 
▷ PRIDE 소개 입니다.

PRIDE의 탄생~~~

1987년 3월 5일 서울 영동(현재는 삼성동)코엑스 1층 메인홀,
이곳에 전시된 42대의 새차를 보기위해 이날 하루 5만명의 사람들이 다녀갔다.
국내 최초의 모터쇼 이야기가 아니다. 6년만에 승용차 시장에 컴백한
기아자동차의 야심작 '프라이드'의 새차 발표회 풍경이다. 발표회 다음날부터
이틀 동안만 열 예정이었던 전시회는 끝없이 몰려드는 인파 때문에 하루를 연장한
3월 8일까지 계속되었다. 당시 기아자동차는 3일 동안 모두 20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고 발표했다. 전시회는 곧이어 부산, 대구에서도 열려 큰 호응을 얻었다.
80년대 후반 현대 포니,엑셀,프레스토와 대우 르망이 주도하던 국내 소형차 시장에
새로운강자가 탄생하는 순간있었다. 프라이드는 기아의 자존심을 회복시켜준 차다.
1981년 정부의 강압적인 자동차공업합리화 조치 이전까지만 해도 기아는 브리사,
푸조604,피아트 등을 내놓았던 이른바 '잘나가는'승용차 메이커였다.
정부는 갑작스런 승용차 생산 규제 조치로 사용차 메이커로 축소된 기아는
국산 원 박스카의 대명사 봉고로 신화를 창조하며 승용차 시장 재진입을 준비했다.
1987년 1월 자동차 공업합리화 조치 해제 두달만에 데뷔한 프라이드는
그동안 기아가 얼마나 승용차 시장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는지 잘보여주는 작품이다.
프라이드가 데뷔하던 날, 기아는 경기도 소하리 봉고 공장 안에 세워진
1만 4천 평 규모 프라이드 전용 공장의 준공식을 가졌다. 준공식장 한쪽에는
미국 수출을 앞둔 수백대의 프라이드가 도열해 있었다. 6년동안 기다리던
승용차 시장복귀와 연산 15만 대 규모의 전용 공장 완공, 1987년 3월 5일은
기아자동차 역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로 남은 날이다.
이렇듯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프라이드는 순수국산 기술로 만든 승용차는 아니었다.
프라이드를 설계한 회사는 일본의 마쓰다. 설계는 일본, 생산은 한국,
판매는 미국 포드가 맡아서 하는 '월드카'로 탄생한 차가 프라이드다.
국산 월드카 1호는 프라이드보다 조금 앞서 데뷔한 르망으로,
독일 오펠의 카데트를 대우가 생산하고 미국GM이 폰티액 브랜드로 팔았다.
프라이드는 국내보다 일본에서 먼저 '페스티바'라는 이름으로 86년2월 데뷔했다.
페스티바는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스타일, 성능, 경제성 등에서 가장 앞선 차로
인기를 모으며 86~87년 일본 베스트카 디자인 대상을 받기도 했다.
승용차 하면 으레 세단형만을 떠올리던 국내 자동차 시장에 프라이드는
신선한 충격을 몰고 왔다. 차체 뒤쪽을 잘라낸 듯한 해치백 스타일에 대해
"트렁크가 없으니 짐은 어디에 싣느냐","뒤에서 받히면 크게 다친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하지만 깜찍한 스타일과 싼 값, 뛰어난 연비로 데뷔 첫해인 87년 2만8천627대가 팔렸다.
이는 당시 국산 소형차 판매의 20.8%에 이르는 수치였다.
데뷔 이듬해인 88년은 5도어모델이 추가되면서 판매량도 4만5천276대로 크게 늘었고,
이후 매년 1만~2만 대씩 늘어 92년에는 연 판매대수 12만6천226대,
소형차시장 점유율 39.4%라는 기록을 세웠다.
프라이드는 승용차 전체 판매대수에서 91~92년 연속 2위 자리에 올랐다.
91년에는 엑셀이, 92년에는 엘란트라가 전체 1위를 차지했다.
94년 3월 후속모델아벨라가 나왔지만, 프라이드는 계속 생산되었다.
아벨라가 예상만큼 인기를 얻지 못한 것이 이유였다.
한달 뒤 엑셀의 후속 모델 엑센트가 발표되면서, 아벨라와 기아 고객을 양분한
프라이드의 판매량은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94년 프라이드는
예년의 절반 수준인 4만8천379대를 파는 데 그쳤다. 이후 가지치기를 통해
왜건과 저가형 모델 영을 추가했지마너 한번 떨어진 인기는 회복할 수 없었다.
98년 기아 부도로 4천672대가 팔려 데뷔 이래 최저 판매를 기록한 프라이드는
99년 12월 리오가 등장하면서 아벨라와 함께 단종되었다.
프라이드는 13년 동안 147만여 대가 생산되었으며 국내 69만여대, 해외에서 78만여대가 팔렸다.


1.1 3도어, 1.3 3도어
 

87년 3월 나온 프라이드의 데뷔 모델은 전부 3도어 헤치백이다.
1.1급 CD,EF와 1.3급으로 CD,EF,DM 등 5개 모델이 가장 먼저 팔리기 시작했다.
모델명 CD는 기본형, EF는 고급형, DM은 최고급형을 말하며 이는 기아자동차의
사훈에서 따온 '신용(credit), 노력(effort), 꿈(dream)'을 의미한다.
1.1 CD와 EF는 1천139cc 엔진을 얹고 최고출력 70마력/6천rpm,
최대토크 10.3kg m/3천500rpm을 냈다.
1천 323cc엔진을 얹은 1.3CD,EF,DM의 최고출력은 78마력/5천500rpm,
최대토크는 12.0kg m/3천 500rpm이다.
기본형 CD는 그야말로 별다른 장비를 찾아보기 힘든 '저가형'이다.
수동 안테나에 스피커도 하나뿐이다. 바로 윗급의 EF는 기본형에 없는
타코미터, 뒤 열선 유리, 디지털 시계를 비롯해 틸트 스티어링,
운전석 요추받침, 5:5분할 시트, 분리형 헤드 레스트등을 갖추었다.
고급형 DM에는 뒷유리 와이퍼, 안개등, 원격조정 트렁크 &연료주입구
열림장치 등이 더해진다. 프라이드의 연비는 18.6km/l로 당시 최고수준을
자랑했고 0 -> 시속 100km 가속은 13.0초.
데뷔 당시 차값은 329만5천 원(1.1 CD)부터 399만 5천 원(1.3DM)이었다.
87년 8월 캔버스톱 옵션을 추가했지만 115만 원이나 되는 비싼 값때문에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88년 3월에는 1.3라인업에 전자식 연료분사장치를 갖춘 최고급형 FS가 더해졌다.
91년 중반에는 1.1모델이 '팝'으로 독립했고 94년 6월 들어서는
모델명을 LX, SLX, GLXi로 바꾸었다. 97년 6월 단종 될때까지 11만8천243대가 팔렸다.

1.1 팝(Pop)
  91년 5월 국산 첫 경차 티코가 나오면서 싼값으로 인기를 모으자 기아는
1.1 3도어 CD와EF를 따로 독립시켜 '팝'이라는 이름으로 내놓았다.
기본형 LX와 고급형 SLX모두 값을 내리기 위해 타코미터를 달지 않았다.
LX의 값은 티코 기본형(299만 원 )보다 80만원 비싼 379만원 이었지만
당시 유일한 300만원대 소형차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팝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89년 324대에 불과했던 1.1모델의 판매는 91년 6천699대,
92년 1만2천491대로 크게 늘었다. 94년 5월 상용차 개념의 밴이 나오면서 단종되었고
3년 동안 3만 대 가까이 생산되었다.
국산 승용차 중 1.1엔진을 얹은 마지막 차가 된 프라이드팝은
최고시속 155km에 연비 17.39km/l, 최고출력 62마력/6천rpm을 내 다른 모델보다
달리기 성능은 뒤졌다.
1.3 5도어
  88년 6월 데뷔한 후 99년 12월 단종될 때까지
31만여 대가 팔린 프라이드의 대표 모델이다 앞서 나온 3도어에 대해
"뒷자리에 타고 내리기 어렵고 짐칸이 부족하다"는 고객들의 불만이 계속되자
이를 보완해 리어 도어를 달고 뒷부분을 조금 늘여 트렁크 공간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휠베이스와 실내도 50mm늘어났다. 89년 한 해 동안 4만 1천128대가
팔려 3도어의 판매(1만6천582대)를 크게 뛰어 넘었고, 93년에는 5만4천593대가
팔려 전체 프라이드 판매(11만 4천308대)의 50% 정도를 차지했다. CD,EF,DM 등
3개 모델로 데뷔했고 이후컬러 범퍼와 파워 도어록, 파워 윈도, 전동식 사이드 미러,
틴티드 글라스 등을 옵션으로 마련한 FS를 추가했다. 94년 5월부터 LX,SLX,GLXi
모델로 바뀌었고 나중에는 GLXi하나만 남아 프라이드 단종때까지 생산되었다.
1.3 베타
  기아가 자체 개발해 90년 11월 내놓은 4도어 세단으로, 베이스모델인 마쓰다
페스티바에는 없다.
특별히 세단형 승용차를 선호하는 국내 고객들을 위해 만든 모델이다.
트렁크 부분이 늘어나 5도어보다 320mm 길고 75kg무겁다.
최고시속은 162km, 연비는 16.79km/l 로 커진 차체에 상관없이 좋은 편이다.
91년 4만84대, 92년 5만 399대가 팔려 3도어와 5도어를 제치고 프라이드의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99년 12월까지 모두 18만7천944대가 팔렸다. 기본형 LX와 고급형 SLX는
카뷰레터 엔진을 그대로 썼지만, 최고급형 GLXi는 전자식연료분사(EGI)엔진을 얹어
최고출력 73마력(5천500rpm)을 냈다.
데뷔 당시 차값은 LX 455만 원, SLX 495만 원, GLXi는 549만원이다.
1.3 밴
  5도어와 4도어 세단의 가지치기에 성공한 기아는 92년 10월 1.3 3도어 기본형의
뒷좌석을 떼어내고 300kg의 짐칸을 갖춘 밴을 내놓았다. 프라이드 밴은 승용차
베이스의 밴 중에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상용차로 분류되어 세금 혜택을 받은 차다.
기업체의 업무용, 판촉용, 자영업자에게 많이 팔려 데뷔 첫 해 두달만에 3천155대의
판매고를 올렸다.
99년 단종 때까지 해마다 1천대 이상 꾸준히 팔려 모두 1만 2천대가 넘게 생산되었다.
1.3 왜건
  1.3프렌드 프라이드 왜건은 96년 1월 데뷔했다. RV 수요 증가에 발맞춰 개발한 모델이다.
프라이드 특유의 튼튼함과 왜건의 장점은 실용성, 넓은 공간을 무기로 시장을 공략했다.
길이는 3천922mm로 베타보다 13mm짧지만, 트렁크 용량은 367리터로 30리터크다.
또 뒷좌석 더블폴딩 기능을 갖춰 짐칸을 687리터로 늘릴수 있다.
데뷔 당시 차값은 555만원으로 준중형 왜건 아반떼 투어링(910만원)보다 335만원이나 쌌다.
프렌드는 왜건의 고급형 모델로 97년 5월 데뷔했다.
차값은 왜건보다 20만원 비싼 575만으로 우드그레인, 루프랙등이 더해졌다.
또 프라이드 중에서는 처음으로 CD플레이어를 옵션으로 마련했고 트렁크 그물망도
기본으로 갖추었다. 왜건은 데뷔 후 2만 4천여 대가 판매되어 비교적 성공한 모델로 평가되지만,
프렌드는 총 판매대수 2천대를 넘지 못하고 단종되었다.
1.3 영(YOUNG)
  97년 2월, 프라이드데뷔 10주년을 맞아 나온 저가형 모델이다.
어려워진 경제상황으로 티코가 다시 인기를 얻고, 아토스와 마티즈가 데뷔를 앞두고 있어
'경차전성시대'가 예고되는 분위기 속에 시장에 나왔다. 1천323cc엔진을 얹은 5도어 모델로
타코미터와 사이드프로텍터를 없앤 1.3 영의 값은 435만원으로
티 코 최고급형 SX(412만원)와 별 차이가 없었다. 97년 한해 8천503대가 팔려
잠깐 인기를 끌었지만, 기아의 부도와 함께 아토스, 마티즈가 잇달아 등장하면서
98년에는 1천702대 판매에 그쳤다. 단종될때까지 1만대 이상 판매되었다.


copyright ⓒ 2001 PrideClub. All rights reserved.